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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벤치만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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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 규정 네 정치&시사 글이 아닙니다

비서구 국가들 중에 가장 빨리 산업화 단계에 접어든 국가에 어떤 나라인가 하면,

 

사람들의 대체적인 인식과 다르게 의외로 '이집트' 가 이에 해당한다.

 

 

 

1.jpg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이집트는 메흐메트 알리(1769-1849) 시대부터 소위 말하는 근대화의 초석을 쌓기 시작했는데,

 

열강에 비해 뒤늦게 근대화에 뛰어든 여타 제 3세계 국가들 중에서 소위 말하는 '국부' 같은 타입의 사람들이야 많이 있기야 하지만,

메흐메드 알리의 근대화가 더욱 유명한 것은 바로 그 '시기' 때문이다.

 

 

 

 

메흐메드 알리의 생몰년은 1769-1849 이다. 

 

 

그리고 그가 이집트에서 자신이 추진하는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만한 절대권력을 확보하고, 

 

동시에 이집트의 '본국' 이던 오스만 제국, 

 

즉 이스탄불에서의 압력을 두려워 하지 않을만한 안전을 비교적 확보한 시기는 1820년대 무렵에 해당한다. 

 

즉, 메흐메드 알리의 개혁은 1820년대부터 시작된 셈이다.

 

 

 

 

 

이 시기는 엄청나게 빠른 시기다. 혹시 나폴레옹 전쟁 관련 책을 본 적이 있다면,

 

당장 그 유럽에서 러시아나 스페인 정도의 나라만 해도 무슨 '낙후' '전근대적' '야만' 막 이런 식의 묘사가 나오는 판이고, 

 

 

무슨 구제국이 프랑스 혁명군과 나폴레옹의 군대를 본따 전근대적 용병 대신 상비군을 만들었네 어쩌네 하고 

 

여러 책에 언급되는게 1790년대 - 1810년대 쯤에 해당하니 말 다한 셈이다.

 

 

 

 

 

 

 

중국으로 치면 근대화 작업에 들어갔다도 아니라 '문을 열었다' 소리 듣는 아편전쟁이 1840년대이니 20년은 더 뒤고, 

 

 

마찬가지로 미국의 페리 제독이 "문 열어라." 해서 일본이 이제 개항한 게 1853년, 

 

"서구식으로 개혁하자." 고 한 메이지 유신이 1868년 이니 40년은 더 뒤에 해당한다. 

 

 

 

 

image.png.jpg

 

 

즉 우리가 근대화의 가장 모범처럼 열리는 일본이 이제 막 뭔가 시작할 무렵인 1860년대의 이집트에선

 

 

의회를 본딴 대표 회의,

 

근대적인 우편제도, 

 

카이로 등에 오페라 하우스 등을 짓는 문화 부흥, 

 

철도 건설 계획, 

 

산업 발전 투자, 

 

수에즈 운하 완공, 

 

사회 간접 자본 구축이 되어 있었을 정도였으니, 비서구권 제 3세계 중에서는 정말 독보적으로 빨랐던 셈이다.

 

 

 

 

그럼 그 어떤 제 3세계의 국가들보다 가장 빨리 산업화 단계에 접어든 이집트는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망했다. 처절하게 망했다.

 

 

이집트의 엄청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사방에서 이를 들이밀고 있다가

 

면화 산업이 망하고 대 에티오피아 전쟁에서 참패하며 삐끗하자

 

바로 이리떼들이 몰려들어 그대로 나라가 작살나고 말았는데,

 

여기서 문제가 된게 그 위치가 너무나 전략적으로 열강들 입장에서 중요하여, 열강들의 개입을 이끌어 버린 측면이 있다.

 

 

1.jpg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2.jpg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여하간에 이런 이집트의 빠른 발전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한 이야기는 일종의 모범이 되어

 

개화기 시기의 일본에서도 이집트를 다루는 책들이 많이 나왔고,

 

일본을 통해 번역이 되며 국내에도 이런 "애급근세사" 같은 책이 나와서 개화기 지식인들에게 반면교사처럼 여겨지던 존재였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에선 이집트는 제 3세계 국가들에게 일종의 룰모델 같은 나라였다는것.


 

 

 

 

이집트는 유럽과 가까운 나라다. 그러면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먼저 빨리 근대식 병기 등을 쓴 나라가 어떤 나라일까? 일본일까?

 

 

 

2.jpg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놀랍게도 그 나라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170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인의 도움을 받았는데,

 

"떠이선 왕조" 가 개국되는 과정에서 "응우옌푹아인" 이 선교 활동을 위해 베트남에 온 프랑스 선교사 피에르 피뇨 드 비엔((Pierre Pigneau de Behaine)를 통해 프랑스에 지원을 요청했고,

 

 

 

이를 통해 프랑스의 무기와 인적 자원이 들어오면서 유럽식 군사체계를 갖추게 된다.

 

 

 

1.png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당시 베트남이 유럽의 기술감독을 통해 만든 '보방식 요새'

 

 

 

 

3.jpg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베트남군

 

 

또한 당시 베트남군은 프랑스를 통해서 유럽의 장교들로부터 교육을 받는가 하면,

 

근대식 포병 교육 역시 받고, 그들을 통해 유럽식 무기 역시 공급 받았다.

 

 

 

여기에 유럽식 선박도 직접 만들었는데,

 

 

1801년에는 60문 짜리 전함 9개, 

 

50문짜리 전함 5개

 

16문짜리 전함 40척 등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런 함선 거의 대부분이 사이공에서 직접 건조된 함선들이었다.

 

 

당시 베트남에선 유럽의 낡은 선박을 구한뒤 이걸 분해해보고, 다시 이걸 재조립하면서

 

베트남의 기술자들이 관련 기술을 익힐 수 있게 했다.

 

 

여기에 프랑스인들의 도움을 통해 여러 백과사전을 번역해서 이론을 갖추었고,

 

 

당시 이런 사이공의 시설은 유럽인들로부터도 인정 받을 수준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1801년이다. 아편전쟁이 1840년이고 메이지 유신이 1860년이다.

 

말이 안될 정도로 빠른 시기고 사실상 당시 동양 최강의 함대는 다름아닌 베트남 함대였던 것이다.


 

 

 

 

 

 

 

6.jpg "근대화" 만 하면 거기서 만사형통으로 일이 다 끝날까?

 

그러나 이런것도 무색하게

 

본격적인 서구열강의 간섭을 받기 시작하자 베트남도 속수무책이었다.

 

 

 

선교사 관련 구실로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베트남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1차 프랑스 침공때 프랑스가 예상치 못한 고전으로 3000여명, 20~30여척의 전함을 보낸 원정을 무려 4년간이나 끌긴 했으나

 

 

프랑스가 스페인까지 끌어들이며 밀어닥치자 결과적으로 방법이 없어서 1차 사이공 조약을 맺으며 항복하고 만다.

 

 

 

 

이후 남부의 6성은 사실상 프랑스령 코친차이나가 되었으며, 베트남은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사실상 베트남은 그보다 더 빠르게 근대식 무기체계를 갖출 수도 없는 시점에서 빠르게 전력을 갖추었으나

 

 

서양 열강이 작정하고 조지려고 마음 먹으면 방법이 없었다.

 

 

 

 

 

대표적인 두 나라 외에도

 

 

그냥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서 그렇지 당시에는 생각보다 빨리 문을 연 나라들은 분명 꽤 있고

 

그런 나라들 태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신통치 못했다.

 

 

 

사실상 따지자면 당시 제 3세계 국가들중에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방식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까지 자리 잡은 나라가 일본 밖에 없는 수준인데,

 

여기까지 가면 왜 다른 나라는 못했냐가 아니라 왜 일본만 그랬냐를 따지는게 차라리 더 나은 부분으로 보인다.

 

 

 

image.png.jpg

 

 

일본은 에도말기 3천만에 달하는 인적 자원등의 기본적인 체급,

 

어지간한 열강도 한꺼번에 먹으려 시도하기 쉽지 않는 덩치에

 

 

 

 

 

특히 막부 권위가 실추되며 극심한 혼란에 빠진 1850~1870년대까지 시기에 정작 열강들이 자기네들 일로 바빠서 별다른 개입을 못하고

(시모노세키 전쟁 등은 있었지만)

 

 

그 사이에 제일 극심한 문제인, 어쩌면 큰 위기가 될 수 있던 내전 문제 등이 별다른 외부개입 없이 후딱 끝나며

 

역으로 한번 갈려서 뭘 추진하기 편해진 환경 등등 여러가지 요소가 아마 겹쳤다고 보인다.

 

 

 

 

 

보통 거의 쓰잘데없는 IF 놀이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방, 근대화를 그저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며 문만 열면 끝 정도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이런저런 요소를 따질게 많고,

 

거기서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더 중요한건 시기 이전에 대외적인 상황을 둘러싼 '외교' 적인 부분도 크게 따져야 할텐데,

 

 

 

사실 개인적으로 저런식의 이야기가 평소에 대체역사소설물을 즐겨 보는 사람 아닌 이상 무슨 크게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은 안하지만

 

 

거기서 거론되는 이야기들 조차도 굉장히 단편적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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