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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시를 좋아하는 브로 있어?

울퍼린
1778 16 20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국어 시간이 좋았거든.

의미 없이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무의미하게 지식(이라기엔 맥락이 제거되어버린 문장 덩어리들)을 머릿속에 우겨넣어야 하는 와중에, 작품을 읽으면서 그 작품에 대해 곱씹어보고.. 나 스스로 의미를 발견해볼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나를 숨쉬게 했던 것 같아.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시를 한 편 고르자면 기형도의 '빈집'이라는 시가 참 기억에 남지.

 

---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나,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

 

시는 원래도 함축적이지만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시라고 한다면, 기형도의 빈집 만한 시가 없다고 생각해.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항상, 사랑을 할 때면 내 마음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해.

그러면서 떠올리는 시는 꼭 김춘수의 꽃, 그리고 기형도의 빈집을 곰곰히 떠올려봐.

 

누군가가 내 마음속에 꽉 들어차버렸을 때의 그 설렘과 기쁨, 주체할 수 없이 폭주하는 감정들. 문득 내가 이 사랑을 놓치게 되면 어쩌지. 내가 이 사랑을 잃게 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 때, 그리고 그런 생각의 끝자락에서 기형도의 '빈집'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에는, 아 내가 사랑하고 있구나 라고 내가 나를 알게 되는 것 같아.

 

최근에도 나는 열병 같은 사랑을 한 것 같아. 이 시간에도 잠을 못 이루고 계속 싱숭생숭한 마음인 걸 보면.

너무 소중한 사람이었고, 내가 모든 걸 다 주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내 마음을 잘 갈무리해서 그 사람과의 사이에.. 서로가 안전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뿐이더라고.

 

헛헛한 마음을 다스리면서 시를 읽어야겠다.. 하는 순간 기형도의 빈집이 떠올랐어.

이미 너무 유명한 시라서 다들 잘 알겠지만, 추억을 떠올리면서 시를 감상해보길 바라.

 

그리고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몸 둘 곳을 잃은 가여운 내 사랑에도 섭섭한 안부 인사 하나만 건네줘.

나는 내일은 오늘보다는 조금 더 괜찮아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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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닌자 21.04.30. 04:46

오랜만에 시 잘봤어^^

빈집 들어본것 같긴하다

울퍼린 작성자 21.04.30. 09:38
닌자

아주 유명한 시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임..ㅎ

2등 ToMania 21.04.30. 07:06

시는 학생때 말고 딱히 본적은 없네. 요샌 핸드폰이 있어 독서도 잘 않하게 되서.

울퍼린 작성자 21.04.30. 09:38
ToMania

나도 독서를 잘 안 하게 되더라고..ㅋㅋㅋㅋ 조금씩 다시 시작해야지~ 요즘 유튜브가 너무 재밌는게 많아~

울퍼린 작성자 21.04.30. 09:39
철원신문

어제는 새벽이라 더 감성적이게 됐나봐.. 평소에도 좀 오그라드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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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망둥어 21.04.30. 08:15

예전에는 좋은시 외우고다녔는데 이젠 생각도 안나는거같아요 ㅠ

울퍼린 작성자 21.04.30. 09:39
선한망둥어

외우기까지~ 대단하다 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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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망둥어 21.04.30. 09:55
울퍼린

다 옛날이이죠~뭐~그때처럼 머리가 안돌아가드라고요 ㅠ

울퍼린 작성자 21.04.30. 09:59
선한망둥어

그래도 시를 좋아해서 외우기까지 하는게 참 대단한 일이잖아

나는 가끔 아주 가끔만 시를 읽거든..ㅎ

skaakd 21.04.30. 10:23

나이드니까 감성적으로 변했어 울었다 ㅜ

울퍼린 작성자 21.04.30. 10:57
skaakd

브로~ 울어도 돼~ 나도 조금 울었어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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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lee 21.04.30. 10:37

나도 시 좋아하는데 요즘은 읽지도 쓰지도 않고있네ㅠ

 

함축적의미를 담아낸 엄청난 문학들인데

 

예전같은 문학작품은 요즘 못본거 같기도 하고

울퍼린 작성자 21.04.30. 10:58
Madlee

브로들에게 하루에 한 작품씩 시를 소개해보려고 해~

담나파파 21.04.30. 12:31

요즘엔 이런 시를 투고 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나?

브로 같은 감성적인 사람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 그게 필요한 때인거 같고...

너무 메말랐어..

울퍼린 작성자 21.04.30. 18:46
담나파파

플랫폼은 모르겠네.. 평소에 감성을 꾹꾹 눌러담고 살아서 가끔 폭발하나봐..ㅋㅋ

사실 나는 겉으로 보면 엄청 무뚝뚝해보이거든

평소에 이런 생각하고 사는걸 티를 내면 다른 사람들이 날 너무 만만하게 볼까봐 일부러 감추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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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 21.04.30. 14:11

학생때는 감수성이 깊었는데

나이드니 먹고살기바빠서

시를 잊고살았네

울퍼린 작성자 21.04.30. 18:46
헤리

시를 잊으면 안 되지

시는 시대의 정신인 거 같아~

dkfmsldk 21.05.03. 19:40

나도 중고등학교 때 이후로 써본적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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