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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도르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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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 규정 네 정치&시사 글이 아닙니다

1784년 어느 날 

 

에티엔 루이 불레라는 건축가가 아이작 뉴턴을 위한 기념관을 만들겠다며 설계도 한 장을 가져왔다.

 

 

 

N7701015_JPEG_2_2DM.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에티엔 루이 불레, <뉴턴 기념관 설계를 위한 디자인>, 1784.
 

 

 

이것을 본 사람들은 구 모양의 건축물이라는 전례 없는 구상이 터무니 없는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어느 괴짜 건축가의 망상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이후 유럽의 건축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것임을 보여주는 징후이자 신호탄이었기 때문이다.  

 

 

 

65414b59979d15fbb91b2cacc0a7990b.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포츠담 상수시 궁전, 1747.
 

 

18세기, 유럽의 왕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다양한 방법으로 높이고 싶어했고 그것은 건축에서 장식이 두드러진 바로크, 로코코 양식으로 나타났다. 

 

이런 양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축가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건축가들에게 바로크, 로코코 양식은 왕의 요구에 묶여 건축가 본인의 사고를 옥죄는 족쇄로 보였다. 

 

건축가들은 기존 양식에 반발해 창조성의 원천으로 여겨지던 고대 시대의 건축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과거를 모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적이지만 기묘한 이 시기의 건축 양상은 그렇게 탄생했다.

 

 

 

 

 

002 Pitz.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존 소안, <피츠행어 영지를 위한 디자인>, 1806-1810

 

 

 

가령 존 소안이라는 건축가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 할만한 전면 유리벽을 건축에 도입하고자 했다. 

 

이 시기 유리라는 재료가 낯선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이렇게 파격적인 방식으로 사용한 예는 드물었다. 

 

그러한 혁신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는지 그의 아이디어는 20세기가 지나서야 온전히 구현된다.

 

 

 

2c743d890232d025.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바우하우스 데사우, 1919
 

 

 

43636.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프리드리히 길리, <프리드리히 대제 기념비를 위한 디자인>, 1797

 

 

 

또 누군가는 로코코의 과도한 장식에 큰 반감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장식을 배제하는 건축을 설계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건축가 프리드리히 길리가 설계한 프리드리히 대제 기념비는 장식 배제라는 자신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 설계했다. 

 

심지어 그는 공장을 설계함에 있어서도 같은 원칙을 고수했는데 이쯤와서는 차라리 SF 영화에 나오는 건축물과 흡사한 외양을 보이기 시작한다.

 

 

 

friedrich-gilly--design-for-the-royal-iron-mill.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프리드리히 길리, <왕립 제철소를 위한 디자인>, 1797
 

 

 

당시 유럽의 사정이 이러했으니 에티엔 루이 불레의 건축 설계가 아주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마구잡이로 상상의 건축물을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특히 그는 그리스, 로마의 양식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거기에 자신의 원칙을 넣고자 했다.

 

 

 

Boullée,_Etienne-Louis_-_Project_for_a_library.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에티엔 루이 불레, <프랑스국립 도서관을 위한 디자인>, 1784.
 

 

프랑스 국립 도서관 디자인의 설계안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읽는 장소가 아닌 책들의 신전이자 토론이 오가는 장소로 생각했다.

 

이것을 건축으로 구현하는 일은 자연스레 그리스 건축 양식을 도서관에 옮기는 작업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The-frontispiece-of-Essais-sur-larchitecture-Marc-Antoine-Laugier-1755_Q640.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마크 앙투안 로지에, 《건축에 관한 에세이》 삽화, 1755.

 

이뿐만 아니라 일부 건축가들은 그리스, 로마에서도 벗어나 건축에 대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후일 있게 될 여러 건축 조류의 선구자격인 저술, 설계, 이론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가령 어떤 건축가들은 장식의 배제를 넘어 인공적인 재료의 사용 자체가 건축의 폐단을 낳는다고 생각했다. 

 

벽돌로 건축물을 짓느니 차라리 나무를 엮어 집을 짓겠다는 건축가 마크 앙투안 로지에의 신념은 그가 작성한 논문의 삽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7369d23b6e8fc01969c627fb20181684.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루이즈 왕비묘를 위한 디자인>, 1810
 

 

다른 누군가는 역설적이게도 고딕 건축이 자신들의 신념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고딕 건축에서 보이는 궁륭 모양이 숲의 나뭇가지가 보여주는 불규칙성에 대응한다고 생각했다.

 

또 그들은 고딕 건축이 보여주는 초월적인 힘에 대한 지향이 왕의 권위를 높이는 것과는 다른 영혼의 울림이 있다고 생각했다. 

 

 

542882119e22aff6d8f7442bc3b7b0c5.jpg 기묘함과 현대성이 공존하는 18-19세기초의 건축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별들의 홀을 위한 디자인>, 1847-1849
 

 

 

그러나 이 시기 건축가들이 펼친 상상의 나래는 대부분 드로잉과 설계로만 그쳤다.

 

여러 현실적인 이유와 더불어 당대인들이 그들의 작업물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 양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신고전주의라는 복고풍 양식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구현하지 못한 여러 선구적 작업들로 인해 이 시기는 복고의 시대이자 현대 건축으로 가는 분기점이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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