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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만화 니체와 토리노의 말, 그리고 밀란 쿤데라

llew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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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edrich-nietzsche-67543_1280.jpg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에 하나로 꼽히는 니체지만, 그의 인생 말년은 상당히 불우했어.

 

1889년 니체는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다가 문득 한 장면에 시선이 꽂히지.

 

토리노의 광장에 말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 모습이야.

 

아무리 마부가 채찍질을 해도, 그 말은 움직이지 않았어.

 

그걸 본 니체는 달려가서 말의 목을 껴안고 엉엉 울다가 쓰러졌지.

 

몇 일간 침대에서 죽은 듯이 누웠있던 니체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말을 중얼거렸다고해.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

 

이 때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세상을 떠났어.

 

그 후에 그는 10년 동안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가족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하다 세상을 떠나거든.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짧은 이야기가 니체의 위대한 철학과 사상들만큼이나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야.

 

 

토리노의말.jpg

 

어찌나 큰 영향을 미쳤던지 무려 2012년에도 토리노의 말이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첫 도입부에서부터 위에 설명된 니체의 이야기를 나레이션으로 전달해주며 시작하지.

 

영화 내내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작품이야.

 

이 작품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다뤄보는 걸로 ㅎㅎㅎ

 

 

니체가 토리노의 말을 보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해석은, 뜬금없게도 도스토예프스키와 관련이 있어.

 

도스토예프스키.jpg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죄와 벌>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오거든

 

똑똑하지만 가난한 탓에,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 좋은 머리를 엉뚱한 곳으로 돌리기 시작한 주인공은

 

비범한 인간은 살인에 대한 압박감조차 이겨낼 수 있으며, 그게 영웅의 자질이라고 생각하게 되지.

 

그래서 자신의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물 중에 제일 기생충 같은 전당포 노파를 죽이기로 결심해.

 

살인을 위해서 치밀한 계획을 짜던 주인공은 아래와 같은 악몽을 꾸게 되지.

 

'여윈 말은 숨을 괴롭게 몰아 쉬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그 광경을 빠짐없이 지켜본 소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 군중 속을 헤치고 말에게 달려가 피투성이가 된 머리를 붙잡고 말의 눈과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런 후 일어서서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미꼴까에게 사납게 달려들었다.'

 

주인공의 꿈에 나타난 '여윈 말'은 자신이 죽이고자 하는 전당포 노파로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 위대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을 몰아붙이는 주인공을 대변하기도 하지.

 

 

니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당연히 죄와 벌도 읽었을거야.

 

그래서 토리노의 광장에서 채찍질을 당하는 말을 본 순간 그 무의식이 떠올랐다는거지.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움직이고 않고 버티는 토리노의 말의 모습에서

 

위버맨쉬, 초인 사상을 주장하는 자신을 대입하게 되어 그렇게 감정이입을 했던 거라고.

 

 

하지만 이에 대해서 조금 다르게 해석한 예술가도 있어.

 

그 중에 하나가 밀란 쿤데라지.

 

 

밀란쿤데라.png.jpg

 

 

 

밀란 쿤데라는 그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라 데카르트를 끌고 와.

 

 

데카르트.jpg

 

 

'인간은 소유주이자 주인인 반면, 동물은 자동인형, 움직이는 기계, 즉 machina animata에 불과하다고 데카르트는 말한다. 동물이 신음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하소연이 아니라 작동 상태가 나쁜 장치의 삐걱거림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니체가 토리노에서 말의 목을 껴안고 울었던 일을 데카르트와 완벽히 상반되는 행동으로 간주하지.

 

'토리노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은 1889년에 있었고, 니체도 이미 인간들로부터 멀어졌다. 달리 말해 그의 정신 질환이 발병한 것이 정확하게 그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바로 그 점이 그의 행동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그의 광기(즉 인류와의 결별)는 그가 말을 위해서 울었던 그 순간 시작되었다.'

 

위의 구절만 보면 그 행동에 대한 평가가 조금 모호하지만, 이어지는 구절에서 메세지는 더욱 명확해져.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니체가 바로 그런 니체이며, 마찬가지로 내가 사랑하는 테레자는 죽을병에 걸린 개의 머리를 무릎에 얹고 쓰다듬는 테레자다. 나는 나란히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본다. 이들 두 사람은 인류, '자연의 주인이자 소유자'가 행진을 계속하는 길로부터 벗어나 있다.'

 

 

밀란 쿤데라는 인류의 진정한 도덕적 실험은 자기와 비슷한 대상인 인간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

 

인간에게 운명을 통째로 내맡긴 동물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뤄진다고 봤어.

 

그가 보기에 데카르트가 주장한 'machina animata'는 인류의 지성을 끌어올렸을지언정

 

도덕성을 말살 시키는데 기여한 사상이고,

 

반대로 니체가 토리노의 광장에서 보여준 행동은 그런 인류에 대한 속죄라고 본거지.

 

그렇게 보자면, 아마 니체가 마지막으로 제정신일 때 말했다고 전해지는

 

"어미니, 저는 바보였어요." 라는 말은 뒤늦게야 그런 점을 깨닫게 된 성찰의 의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뭐... 사실 니체가 다시 환생해서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영원히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겠지 ㅎㅎㅎ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볼만한 논제를 던져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마 토리노의 말은 앞으로도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변주되지 않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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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블 존블 Bro 포함 9명이 추천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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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unted 21.06.30. 06:57

좋은 정보 고마워 브로!

llewyn 작성자 21.06.30. 16:47
unted

나야말로 댓글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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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철원신문 21.06.30. 07:51

ㅎ 좋은정보요 브로 오늘도 화이팅해요

llewyn 작성자 21.06.30. 16:47
철원신문

감사합니다 ㅎㅎ 오늘 하루도 잘 이겨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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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blueskykim 21.06.30. 10:16

니체가 저렇게 사망했을 줄이야....

 

잘 읽었어 브로~

llewyn 작성자 21.06.30. 16:48
blueskykim

아무리 유명인이라도 그 말년까지는 잘 전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ㅎㅎ

 

그나마 니체는 상당히 특이 케이스라 이렇게 오래 기억 되는 것 같아

귀티모티 21.06.30. 14:11

뭔가 심오하네.

니체가 정신병에 걸린건 매독균에 의한것이라는 설도 있던데.

어떤든 철학의 심오함인지,인간의 연약함인지 남은자들의 숙제겠지.

llewyn 작성자 21.06.30. 16:50
귀티모티

남은 자들의 숙제라니 멋진 표현이네!

 

확실히 매독 설도 있지 ㅎㅎㅎ 완전히 검증된 건 아니고, 한 인물에 증언에 의한 부분이라....

 

아무튼 결국 진실은 알 수 없고, 그 해석은 남은 자들의 몫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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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멤버 KEI 21.06.30. 22:43

어린시절 죄와벌,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놀라움을 느낀 기억이 떠오르네.

 

그때는 왜 그리도 많은 열정과 호기심으로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했는지.

 

한국은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사색하는 문화가 거의 없어서 안타까워.

 

10대.20대 시절에 이렇게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야.

 

그 이후의 상황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텐데.

 

다들 너무 눈앞의 것들만 보려고 하는 마인드가 강해서 씁쓸하네.

llewyn 작성자 21.07.01. 01:08
KEI

고전 문학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가 당장의 스펙과 취업에 도움이 안 되니까...? ㅎㅎㅎ

 

근데 많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은 정말 그 젊은 시기 아니면 못할 일 같아.

 

만약 학생 때, 저런 작품들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못 읽을 걸....

 

진짜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일인데 안타깝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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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멤버 KEI 21.07.01. 01:24
llewyn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면서. 진짜 실력을 키우려고 하는게 아니라. 스펙 같은 가짜 실력만 키우려해서 그래.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점수. 스펙. 이런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도전정신이 실종되어 버렸고. 다들 인생 편하게 살려고 하고. 어떻게든 갑이 되려고만 하는 마인드.

 

앞으로 울코가 성장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울프코인의 존재를 알게되면 바뀌게 되겠지.

 

온라인에서 보낸 시간과 노력들이 그대로 돈이 되는 세상에서 울코작가가 어떤 의미가 될것인지.

 

자신만의 취향과 관점, 가치관을 단련시키며 무수히 많은 시간을 보내온 새로운 전문가들이 등장하게 될거야.

 

그때야 말로 진정한 변화와 혁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도전들이 움트게 되겠지.

llewyn 작성자 21.07.01. 01:32
KEI

맞아.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보다는 기존 시스템에 순응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아.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 오지랖 부릴 수는 없지만....

 

마치 사회가 그걸 권장하는 것 같은 분위기로 가는 건 영 별로긴 하지.

 

더군다나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점점 더 사라져 가는 지금 같은 시기에....

 

결국에는 양극화 되는게 아닐까 싶어.

 

꾸준히 밑천을 쌓아온 사람들은 본업과 별개로 사이드 프로젝트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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