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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전쟁이야기] 역사속 라이벌 01 - 한니발 vs 스키피오 1편

알렉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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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의지앞에서는 높은 산도 몸을 낮춘다' -한니발

 

'눈물을 흘릴 눈이 하나뿐이라는 것이 원망스럽구나' -한니발

 

1. 한니발의 등장​

 

1차 포에니전쟁 이후 카르타고의 이베리아반도 식민전쟁에서 군사적 재능과 통솔력을 모두에게 인정받은 한니발은, 이후 이베리아반도의 카르타고 주둔군 총사령관이였던 매형 하스드루발이 죽자 그의 지위를 물려받아.

 

이미 로마와 카르타고는 1차 포에니 전쟁으로 한바탕 한 사이였기에 안그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한니발은 장군출신인 아버지의 영향때문인지 로마를 멸망시키겠다고 어린시절에 맹세도 했을만큼 로마를 증오하고 있었어.

 

그래서 시기적절하게 이베리아반도의 주둔군 사령관이 되자마자 그는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기로 마음먹어.

2. 사군툼 공방전

 

한니발은 우선 스페인지역에 있는 사군툼이라는 부유한 로마의 동맹 도시를 털기시작하는데, 로마는 이탈리아 북쪽의 갈리아인들을 경계한다고 구원군을 보내줄 형편이 아니였어.

 

결국 사군툼은 결사항전끝에 함락당하고, 한니발은 살아남은 주민들을 모두 노예로 팔아버려.

3. 2차포에니전쟁 발발

 

사군툼의 소식을 접한 로마 원로원은 당연히 노발대발했고, 카르타고에 따지기위해 파비우스라는 사람을 사신을 보내. 그런데 카르타고 원로원측에서는 한니발의 독단적 행동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그를 감싸주었고,

 

로마가 에브로강을 양국의 경계선으로 삼는것을 합의해놓고 그 경계를 넘어 사군툼과 동맹을 맺은 점, 또 그 동맹도 카르타고의 동의없이 체결된 점을 들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는데,

 

이에 빡친 파비우스의 전쟁선포가 아주 일품이야.

파비우스 : '전쟁과 평화 둘중 하나를 택하시오'

카르타고 원로원 : '당신이 주고싶은걸 주시오'

파비우스 : '좋다. 전쟁을 주겠다'

 

<2차 포에니전쟁 모식도>

 

한니발 혼자서 이탈리아 전역을 털고 다녔다는걸 알수있어.​

4.알프스를 건너는 한니발

 

역시 고대판 천조국답게 로마는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갈리아지역과 시칠리아로 방어군을 신속하게 파견해.

 

이에 한니발은 로마군의 눈을 피해 알프스 산맥을 넘기로 하고, 일부 스페인 방어병력을 남겨둔 뒤 약 4만명의 병력과 40여마리의 코끼리를 끌고 출전해.

 

그런데 알프스를 횡단하는 과정에서 보병의 2분의1, 기병의 3분의1, 대부분의 코끼리가 죽어버리는 대참사가 터져버려. 로마군과 제대로 만나기도 전에 엄청난 핸디캡을 가지게 된거지.

5.첫 교전과 한니발의 깽판​

 

우여곡절끝에 알프스를 넘은 한니발은 북이탈리아의 타키누스에서 최초로 로마와 교전했고, 기병의 압도적 우세를 이용해 로마군을 박살내버려.

 

이후 여기저기에서 약탈을 벌이는등 깽판을 치다가 트레비아전투에서 로마군을 다시 한번 박살내버려. 로마군은 이 전투의 패배로 북이탈리아에서 철수했고,

 

이곳에서 로마의 식민지화에 맞서고 있던 수많은 갈리아 부족들이 모조리 한니발의 편에 붙어버려.

 

이후 남하를 시작한 한니발은 길목을 차단하고 있던 플라미니우스의 로마 대군의 눈을 피해 늪지대를 통과하는데, 추격군을 뿌리치기 위해 3박4일동안 수면없이 걸어서 늪지대를 통과해버려.

 

한니발조차 풍토병으로 한쪽 눈을 잃을만큼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의 강행군이었는지라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어. 

 

근데 더 대단한건 늪지대를 통과한지 고작 3일후에 로마의 추격군 2만명을 몰살시키고 그 사령관 플라미니우스까지 죽였다는거야.

 

6.칸나에전투​

 

한니발은 남하를 계속해 남부 이탈리아의 요충지 칸나에까지 도착했고, 그 사이 새로운 집정관을 선출하고 부대를 훈련시키는 등 재징비의 시간을 가진 로마군은 1년동안 비축해둔 최대전력인 9만 대군을 칸나에로 보내.

 

한니발의 병력은 4만명정도여서 머릿수로 찍어누르려고 했지만, 문제는 한니발의 대명사인 '망치와 모루' 작전에 당해 5만명이 전사하고 3만명이 포로로 잡혀버리는 대참사가 터져버렸다는 거야.

 

당시 로마의 최대징집가능병력을 40만명정도로 추정하는데, 국력의 5분의1이 한큐에 증발해버린거지. ​반면 한니발측은 5천명밖에 죽지않았다고 해.

 

살육에 지친 한니발의 정예 보병대가 중간에 쉬러갔다는 기록도 있을만큼 일방적인 전투였어.

<기병의 우위를 이용한 포위섬멸의 교과서 칸나에전투>

 

대충 요약하면 카르타고 보병들이 초승달 대형으로 로마 보병을 깊숙히 끌어들여 최대한 밀착해 붙잡아놓는 '모루'가 되어주고, 양익의 기병들이 로마 기병을 털어버리고 멀리 내쫓은 뒤 포위망의 뒤쪽에서 돌격해 로마군을 부수는 '망치'역할을 수행함으로서 사면포위가 완성됐어.

 

좁은공간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7만의 로마보병은 자기들끼리 사실상 끼여버려서 정말 아무것도 못해보고 그냥 서있다 죽었다고 해. 

 

어떤 로마 역사가에 따르면 1분당 600명이 죽었다고 해.​

[바깥쪽에 서있던 로마군은 끊임없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로마군의 안쪽으로 파고들어 커다란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결국 그들이 서있는 자리에서 모두 죽게 되었다.] - 폴리비우스​

 

7.칸나에전투 그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고안한 이 전술을 완벽하게 정석대로 구사해 로마가 1년동안 공들여 키워낸 9만 정예병을 한방에 박살내버리자,

 

이탈리아의 제2도시 키푸아와 시칠리아의 대도시 시라쿠사, 남부 이탈리아의 맹주 타렌툼등 여러 도시들이 한니발의 편으로 합류하게 돼.

 

그리고 한니발은 이런 항복한 도시들에서 주둔하며 병력과 군량을 보충했어.

하지만 한니발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어. 이미 지중해는 로마해군이 장악해버렸기에 카르타고 본국은 한니발에게 추가 보급을 해줄수가 없었어.

 

나중에 기병4천명을 우여곡절끝에 지원해주는데, 이는 10년이 넘는 전쟁기간동안 한니발이 조국으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지원이야.

그렇다고 대도시 로마에 본인의 부대만으로 갖다박는건 자살행위라는걸 본인도 알고있었기에, 한니발은 로마의 동맹도시들을 충분히 자기의 편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군세로 로마를 멸망시키려고 했어.

 

하지만 한니발의 예상과는 달리 칸나에서의 로마 대패에도 몇몇 도시들을 제외하면 로마의 동맹결속은 여전히 굳건했어. 이는 평소 로마가 동맹국들에게 자신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대해줬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해.

 

결국 한니발은 칸나에의 대승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로마로 진격할수 없었어.

게다가 속전속결로 전쟁을 진행하고자 했던 한니발의 바램과는 달리, 정신을 차린 로마 지휘부는 한니발과 싸워주지 않고 우세한 머릿수를 이용해 그를 대치상태로 붙잡아놓기만 하고,

 

그가 지나왔던 곳들을 재탈환해 한니발의 힘을 서서히 뺌과 동시에 한니발의 핵심 근거지 이베리아 반도로 원정군을 보내 빈집털이 할것을 주장했던 파비우스를 지휘관으로 임명했고, 이 계획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져.

 

전쟁을 고의적으로 질질끄는 지구전의 시작이였지.

하지만, 한니발 본인도 몰랐을 가장 큰 불운은 칸나에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아 도망친 1만명 남짓했던 패잔병들 사이에 당시 20살이였던 젊은 장교 스키피오가 있었다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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