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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너무 나도 푸른 밤

소로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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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푸른 밤이었다. 캄캄해야 지당한 하늘임에도 무언가 서글픈 것에 달의 빛이 닿았는지 너무나 푸르러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밤이었다. 잠에 들어야 하는데, 다음날 할 일이 산더미인데 저 색다른 빛을 뿜는 하늘이 도무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자야지, 하며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가 갑자기 벅차올라 두근대는 심장에 결국 대충 벗어 던진 옷들을 다시 걸치고 밖에 나왔다. 내가 미쳤지, 드디어 돌아버린게지 하며 쌀쌀함에 몸을 떨면서도 기다리는 이 있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걸었다. 너무나 푸른 밤이었기에.

그때 기적처럼 너를 만났다. 커다란 눈망울에 푸른 빛을 담아 추운 겨울임에도 무언가 역동적인 생명이 느껴지는 너였다. 그 따스한, 추위 가운데 모든 것을 녹일 것만 같은 뜨거움에 너에게 나는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네 앞에 마주한 나는, 크게 놀랐다. 내 절반도 오지 않는 체구에 말라 툭치면 쓰러질 것만 같은 몸에 담겨있는 너였기에. 서둘러 겉옷을 벗어 둘러주자 너는 뭐라고 했었지. 감사합니다, 뭐 그 비슷한 어조였던 것 같다. 경계심이 많아 내 층수가 노출될까 겁나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는 내가 너에게 우리 집 갈래, 라며 손을 뻗었던 이유는 그래, 너무나 푸른 밤이어서. 그게 다일 것이다.

내 집에 들어온 너는 한참을 두리번댔다. 포식자 앞에 놓여진 먹이의 눈을 하며 마치 여기 있는 무언가가 날 해할까 두렵다는듯이. 따뜻한 집에서 오히려 밖에서보다 더 떠는 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여기는 안전하다는 말 대신, 따뜻한 코코아를 제공하는 일뿐이었다. 넌 그 달콤함과 따스함에 비로소 녹아내리듯 웃어보였다. 그때의 네 미소가 아직도 선명한 것은 네가 네 아픔을 덮을만큼 강하고도 따뜻한 아이어서. 어쩌면, 두려움을 벗겨낸 네가 너무나 예뻐서. 그래, 푸른 밤이어서.

그렇게 우린 말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딱히 네가 있다고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았고, 너 역시 점점 밝아지는 게 보여 그게 내 기쁨일 뿐이었다. 하지만 며칠 후 경찰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난 너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네 옷을 억지로 벗겨내며 저 푸른 멍자국이 안보이냐고, 저 아이는 살기 위해 도망쳐 나온건데 어찌 내가 이 아이를 저버릴 수 있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다시 죽은 눈을 한 너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그저 감사합니다, 하고 경찰의 손을 잡고 날 떠나버렸다. 그 뒤로 더이상 나는 푸른 밤을 볼 수 없었다. 때론 저 달에게 네 서글픔을 가져가달라 빌었지만, 달이 그 소원을 들어줬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넌 얼마나 컸을까. 아직도 네 눈은 아픔을 담고 있을까. 푸른 멍들로 수놓여 푸르다못해 파란 빛을 띠던 네 몸은 과연 뽀얀 제 살빛을 되찻았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에 이루지 못한 날이 이어졌고, 난 갈수록 수척해져만 갔다. 그날도 잠이 오지 않아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때였다. 저번에 보았던 유난히도 푸른 밤이 다시 찾아왔다. 내 희망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몰랐지만, 너무나 선명한 그 푸른 빛에 난 맨발로 밖을 뛰쳐나갔다. 넌 그날처럼, 보다 후련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아아 그래, 유난히도 푸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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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lee Madlee Bro 포함 1명이 추천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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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Madlee 21.12.24. 21:40

실화기반의 이야기야 브로??

 

로맨스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뭔가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날카로운 가시같은 글이네

소로소로 작성자 21.12.25. 14:11
Madlee

ㅋㅋ창작글이라고 ㅎ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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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lee 21.12.25. 16:52
소로소로

경찰차가 삐뽀삐보해서 놀랬다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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