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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도르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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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1964년 리치 '딕' 앨런 (필라델피아) bWAR 8.8

 

162경기 201안타 29홈런 91타점 38 2루타 13 3루타

0.318 - 0.382 - 0.557

 

 

1942년 펜실베니아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앨런은 어렸을 때부터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발휘했다. 

농구와 야구에 재능을 보이던 앨런은 어머니를 위해 집을 사고 싶은 마음에 프로 농구 선수로 뛰려고 했지만 

1960년 필라델피아 스카우트의 제안으로 약 7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입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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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이 입단한 필라델피아는 그야말로 형편 없는 팀이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모두 최하위를 전전했고

1961년에는 무려 23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1962년부터는 자니 칼리슨과 토니 곤잘레스 같은 선수들의 분전으로 성적이 나아졌지만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팀이었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좌 재키 로빈슨 , 우 1947년 당시 필라델피아 감독 벤 채프먼]
 

거기에다가 필라델피아 구단은 인종 차별로 악명이 높았다. 

대표적으로 1947년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였던 재키 로빈슨이 필라델피아 원정을 갔을 때
 

필라델피아 감독이었던 벤 채프먼과 몇몇 선수들은 로빈슨에게 '목화밭으로 돌아가라' 같은 인종 차별적 발언을 사건이 있었고

첫 아프리카계 흑인 메이저리거를 1961년에나 받아들이는 등 흑인 선수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구단이었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입단 후 앨런이 뛰었던 마이너리그 팀의 연고지 또한 앨런에게는 가혹했다. 시즌 개막전에서 관중이 "우리 팀에 흑인 선수를 데려오지마라" 라는 플랜 카드를 들고 있기도 했고 경기 후엔 앨런을 위협하는 내용이 담긴 쪽지를 받기도 했다.

숙소 주변을 걷다보면 지나가던 시민들과 경찰관에게까지 인종 차별을 당하기까지 했는데 이는 인종 차별 문제가 거의 없던 곳에서 살다온 앨런에게는 너무나도 힘든 환경이었다. 
 

앨런은 야구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게 됐지만 어려웠던 집안 사정을 위해 참기로 했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앨런의 재능은 빛났다. 한 시즌 동안 0.289의 타율과 33홈런, 97타점을 기록했고 12개의 3루타를 기록하는 등 대단한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팬들이 뽑은 팀 내 MVP에 선정되며 자신에게 부정적이었던 여론까지 돌려놓은 앨런은 그 해 시즌 말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메이저리그 첫 경기에서 2루타를 기록한 앨런은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인상 깊은 활약으로 그 다음 시즌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1964년 시즌에 들어가기 앞서서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필라델피아 감독은 앨런에게 3루수를 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앨런의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와 외야수였다.

3루수를 본 적이 없는건 아니지만 많은 경기를 소화하진 않았다. 그런 앨런에게 왜 갑자기 3루수를 보라고 했던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팀에 우타자가 없어서 였다. 정확히는 주전급 중에서 우타자는 키스톤 콤비였던 바비 와인과 토니 테일러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둘은 공격력이 매우 약한 타입이었기 때문에 팀의 공격을 이끌 우타자가 없었던 것이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필라델피아가 대책 없이 시즌을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우타자이자 원래 3루수가 주 포지션이었던 돈 호크를 영입했었고 기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스프링 캠프 동안 앨런이 보여준 재능은 보고 지나치기 어려웠다. 감독이 생각하기에 앨런은 분명히 주전으로 나와야할 선수였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3루로 포지션을 옮겼다.

그리고 다른 포지션에서 보여줬던 수비 능력이면 3루에 빠르게 정착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앨런은 3루수로서 시즌 준비를 했고 마침내 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 3루수이자 3번 타자로 경기에 나섰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앨런의 기세는 놀라웠다. 개막전부터 2안타를 때려낸 앨런은 4월 11경기를 치루면서 0.426의 타율과 5홈런으로 단숨에 팀 공격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레그킥 없이 특유의 빠른 스윙 스피드로 공을 담장 밖으로 넘겼다. 순식간에 투수들의 분석 대상이 된 앨런은 이후 고전하지만 빠르게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고 다시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전반기가 끝난 시점, 앨런의 성적은 타율 0.308, 16홈런 47타점이었다. 
 

앨런의 호성적과 동시에 다른 선수들이 분전을 하며 필라델피아는 그 유명한 '윌리 메이스'가 이끌던 샌프란시스코보다도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하지만 필라델피아는 뒷심이 부족했다. 90승 60패로 리그 1위를 달리며 우승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무려 10연패를 당하며 2위로 처졌고 결국 공동 2위로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앨런은 후반기에도 기복 없이 좋은 성적을 냈고 득점과 3루타에서 리그 1위를 달성했다. 162경기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단 한번의 결장도 없이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 이런 성적을 바탕으로 앨런은 신인왕을 수상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 계산해본 1964년 앨런의 WAR은 8.8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윌리 메이스, 론 산토에 이은 해당 시즌 3위 기록이며 

역대 모든 신인왕 중에서도 3위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순식간에 메이저리그 스타로 올라선 앨런에게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신인왕 다음 해였던 1965년, 연봉 인상 문제로 스프링 캠프 참가를 거부하기도 했고 팀 동료와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난투극은 앨런이 억울할 수도 있는게 당시 팀 동료가 앨런에게 먼저 인종 차별 발언을 했던 것이다. 그 후 앨런이 이를 못이겨 주먹으로 가격했고 앨런에게 맞은 동료가 배트로 앨런의 어깨를 가격하는 일이 벌어졌고 결국 그 팀 동료는 방출되고 만다.

하지만 이 사건이 잘못알려지면서 앨런은 '백인 선수를 무고하게 쫓아낸 흑인 선수' 라는 오명을 썼고 

홈 팬들에게 야유를 받고 만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3할을 치면서 40홈런을 치는 등 실력은 확실했지만 태도가 불량했던 앨런은 필라델피아에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면서 결국 7년 만에 필라델피아를 떠나게 된다.

이후 세인트루이스, LA 다저스를 거쳐서 시카고 화이트 삭스에 정착한 앨런은 1972년 아메리칸 리그 MVP를 수상하기에 이르지만 
 

불량한 훈련 태도와 잦은 부상으로 고생했다. 화이트 삭스에서 3년 동안 뛴 후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앨런은 노쇠화와 부상으로 급격히 성적이 내려갔고 결국 1977년 오클랜드에서의 시즌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한다. 당시 나이 35세였다.

 

 

 

 

 

 

 

image.png 역대 신인왕 수상자들 - 1964년 딕 앨런
 

 

은퇴 후 잠시 코치 생활도 했고 여러 영화에서 까메오로 나오기도 했던 앨런은 필라델피아의 초청을 받아서 2009년 내셔널 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2010년 필라델피아 스포츠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선정됐던 앨런은 

2020년 12월 7일 자신이 태어난 마을에서 78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앨런은 은퇴 후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서라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야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던 선수 중 한 명이다.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과 불법적인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시대 이전 최고의 파워 히터 중 한 명이었고 누적이 부족하지만 투고타저의 시대에 주로 활동했다는 것이 그 이유로 꼽힌다. 게다가 자주 사고를 쳤지만 의외로 클럽 하우스에서 팀 분위기를 해치지 않았고 
 

오히려 훌륭한 주장이었다는 팀 동료의 증언도 있다. 과연 앨런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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